이 진 구(자유기고가)


  세계챔피언

  케시어스 클레이라는 흑인 권투 선수가 있었다. 이 선수는 1960년 로마 올림픽 복싱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땃다. 

  그러나 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자기 나라 식당에서 조차 흑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난다.“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한 영광은 아무 쓸모가 없다.”며 클레이는 그 길로 올림픽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1964년 WBC 헤비급 세계챔피언이 된 그는 백인 주인의 성과 노예의 이름인 케시어스 클레이란 이름을 버렸다. 링 위에서는 챔피언이었지만, 링 밖 사회에서는 늘 얻어맞았던 그는 노예 이름 대신 스스로 이름을 선택함으로 스스로의 삶도 새롭게 살기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이름은‘무하마드 알리’였다.

  1967년 베트남 전 징집명령을 거부하여, 챔피언 타이틀이 박탈되고 3년간 시합에 출전이 정지되었으며, 권투선수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수년 후 알리는 32세라는 운동선수로는 환갑의 나이에 다시 링에 올랐다. 링 밖에서 빼앗긴 챔피언 벨트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젊은 챔피언 조지 포먼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주먹을 겨눈 무하마드 알리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당신들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챔피언 되겠다. 베트콩은 우리를 검둥이라 욕하지 않았다.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지식체널e 참조)

  불평등은 인간 존엄성의 문제

  불평등과 차별, 소외는 상대적 박탈을 의미한다. 상대적 박탈감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인간 본질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10%가 차지하는 소득은 나라 전체 소득의 44.87%나 될 만큼 불평등이 심각하다. 더욱 비참한 것은 ‘돈이 돈을 버는’ 부의 집중도도 세계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현실에서 어떤 현상으로 나타날까?

  [부와 빈곤의 상속]이라는 엄청난 계급사회, 즉 인도와 같은 철저한 신분사회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 첫번째 징조가‘개천에서 용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판ㆍ검사가 된다한들 부정하지 않고 월급 모아봐야 평생 집 한 채 사기 빠듯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60~70년대 논, 밭을 팔아 자식 공부시키던 부모님들의 ‘눈물겨운 인생’을 우리와 우리 자식들이 이어 받아야 한다.

  공부 시키는 것을 넘어, 자식들에게 물려 줄 상속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60~70년대나, 지금이나‘자식이 나 같은 어려운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부모들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피케티 열풍

  프랑스 파리대학 교수이자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가 저술한 '21세기 자본'이란 책이 미국에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데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 1~2위를 점하며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피케티가 주장하는 것은 ‘경제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동에서 나오는 소득과 달리 자본에서 발생하는 소득, 예를 들어 투자수익, 임대수익, 부동산 거래 수익, 이자수익 등은 부유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심해지면 앙드앵 레짐(봉건주의의 폐해, 혁명을 유발시킨 구체제) 때만큼 심각한 악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유층에게 누진세가 적용이 되어야 하며, 결국 누진세는 자본가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정의와 삶의 질 차원에서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뚜렷한 방법과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피케티가 그 진실과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독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이다.

  피케티는 한국의 경제정책이 부유층들에게 유리하게 진행됨으로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근의 경제정책은 다시 역사를 거스러고 있다.

  세수 확보를 위해 담배세, 주민세, 자동차세 등을 올린다. 대표적으로 서민 주머니에서 나오는 세금들이다.

  이 와중에도 중소, 중견기업 사장들의 상속과 증여세를 감면해주는 ‘상속세 및 증여세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서민들의 세금은 올리고, 부자들의 세금은 낮추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심각해지는 ‘부의 집중과 소득의 불평등’을 해소하는‘경제민주화를 통한 양극화해소’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지금은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미국 사회가 저지른 차별과 불평등을 뛰어넘어야 한다.

  무하마드 알리 시대에는 피부색에 의한 차별이 있어, 차별하고 차별 당하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지만 지금의 차별은 교묘하고 치밀하여 차별 당하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한 것은, 알리는 식당에서 쫓겨났지만 이미 우리 주위엔 쫓겨나기 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식당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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