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살다보면무심코 길을 걷다 넘어지기도 하고살다보면고드름이 땅에서 솟구치기도 하고살다보면새똘에 얼굴을 맞기도 한다어디 물이 원하는 곳으로만 흐르던가바람따라 구름따라 무심히 흐른다햇살이 늘 따갑기만 하던가천둥번개가 태풍을 몰고 오고삭풍에 눈보라가 치기도 한다살다보면사랑했던 남에게서 또 다른 사랑을 배우고살다보면뒷통수를 치고 달아난 친구가 스승이되기도 한다시냇물이 강물이 되고강물이 바닷물이 되듯새봄이 오면 낙엽이 꽃이 되듯살다보면 그렇게 살다보면
고향은 생각만 해도 포근하고 아련한 추억이 꿈틀거리는 곳이다. 내 고향은 경주시 광명동이다. 골 깊은 곳에 동네가 있어 ‘골안’ 이라 불렀다. 7남매 막내인 아버지로부터 5남매 막내로 태어나 40대 초에 부모님과 남편을 잃은 채 버거운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늘 부모님이 그리워 향수에 젖어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칠 남매 중 고모 한 분만 ‘방네’로 시집가고 큰집, 작은집, 고모 집까지 이웃 되어 살았다. 서로에게 따스한 울타리가 되고 쉴 그늘이 되어주며 사랑과 돌봄 속에 인정이 넘쳤다. 마당 가장자리에 큰 솥 걸어놓고 도
마비정 벽화돌담 골목길에서 서성이고 있다가슴 깊숙한 곳이 허전하다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다세상 절벽을 기어오르면서찢어진 호주머니 속에서한 장 두 장 허공으로 날아간 사진들철이 영희 순이 달구지 말뚝 박기이름은 입속에서 노는데모습들이 휑하니 날아가 버렸네반월 장날에 가신 할배 손에희멀건 눈알의 간고등어가 스쳐 간 길술심부름 간 손자의 얼굴에 진달래 피었던 길할배의 일성고놈... 참! 하시면서허허 웃는 소리에 화들짝 까어보니허공에 날려간 빛바랜 사진들이간밤에 내린 봄비에 젖어마비정 마을 담에 불어있네
친구가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다니던 직장엔 휴직을 내고 아이들은 친정 부모님한테 맡겨두었다. 남편과 성격이 맞지 않는다며 몇 개월째 별거 중이었는데 인도를 다녀와선 미뤘던 이혼서류를 법원에 넣을 참이었다. 그곳에 가면 무언가 삶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에게 아이들이 잘 있는지 가끔씩 그녀의 친정집에 들러 봐 달라고 부탁했다. 두 달 만에 그녀가 여행에서 돌아왔다. 차 한 잔 마시자며 연락이 온건 입국 다음날이었다. 결이 고왔던 긴 머리는 윤기가 다 빠진 듯 푸석했고, 지적이던 하얀 얼굴은 거무스름하
마음속을 열어봐말로 다하지 못한마음속 이야기가톡톡 튀어나와 한바탕 논다무지갯빛 생각들이출렁출렁 바다를 만들고생각의 씨앗이쑥쑥 자라서 숲을 만든다하얀 도화지에꿈틀꿈틀나의 꿀들이 헤엄쳐 다닌다
일생을 살면서 인연이란 이름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희로애락이 물레방아처럼 돌아가는 인생길에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역사를 이루어간다.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평생 만나는 사람이 약1,500명이라고 한다. 그중에는 만나서 편하고 유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불편하고 해가 되는 사람도 있다. 좋은 사람만 만나면 좋겠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모습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타고난 재능과 사고가 다른 사람들이 섞여서 살아가는 일생뿐인
산딸기 정석현 연분홍 접시에 나의 하얀 꽃향기의 마음을 가득 담아 그대께 드리리다 붉게 물던 산딸기같이 달콤새콤한 맛의 향기를 하얀 접시꽃 쟁반에 가득 담아 드리리다 알알이 영글어 무더운 초여름에 입맛을 돋우는 새콤달콤한 영양을 붉은 접시꽃 쟁반에 소복이 담아 드리리다 들판 야생화의 짙은 향기의 순수한 마음도 분홍 접시꽃 쟁반에 가득 담아 드리리다 이름 모를 새들도지푸라기 집을 짓고 파란 알을 낳아 품으며 지지 비비 계절을 노래하며세월을 만드는데 양지쪽 햇살을 받으며 빨간 산딸기 정열을 가슴에 품고서 건강과 행복을마음 접시꽃 쟁반에
아름다운 통곡 허물어진 사원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를 제압한다.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던 기운의 세례를 받는 냥 가슴이 뭉클하다. 이파리 하나 없는 스펑나무를 받들고 서 있는 사원은 폐허가 된 것으로 보아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짐작케 한다. 나는 지금 캄보디아의 사원, 앙코르 톰에 와 있다. 담과 담 사이는 마치 용암이 흘러내린 형상이다. 사원을 짓느라 동원되었을 사람들의 힘겨움이 사암에 새겨져 있다. 돌 틈 사이로 사원 곳곳에 파고든 뿌리들은 사원과 나무가 한 몸이 되어 관광객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앙코르 톰은 앙코르 왕조 자
6월 6일은 애국 애족, 호국 선열들을 기리는 날 몇천의 발자국이 충혼의 무덤을 다녀가고 몇천 송이의 백합이 그대들을 연모하여 향기를 뿌리더라도 꼭 오늘만 햇살이 비춰준다고 하지 말자 꽃다발은 시들어 버리면 그만 6월 6일은 장렬한 순국의 뜻을 기리는 날 아카시아 향기 뿌리고 산딸나무 흰 꽃핀 꽂으며 무덤가에 뻐꾸기 울음 떨어진다고 저어기 저기 미물도 슬퍼하며 숭고한 희생을 노래한다고 하지 말자 노래는 물결 위에 떠내려가는 꽃잎 6월은 호국 보훈의 달 저 위에 높은 사람과 시민과 유족이 함께 희생의 정신을 가슴에 새기는 달 오늘만
그리움그리워돌아보면아무도없고보고파돌아보면먼 산 구름뿐...나른한봄창엔하-얀낮달만졸다가네.
3남 2녀 중 막내인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둘째로 태어난 띠동갑 언니는 시집갈 때까지 머리를 길러서 허리춤까지 내려왔다. 그 긴 머리를 시집갈 때까지 한 번도 다른 손에 맡기지 않고 땋아주신 분이 있다. 바로 우리 아버지다. 그런 자상하고 따뜻했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포근해진다. 내가 일곱 살 때 장질부사(장티푸스)로 죽을 고비를 겪었다. 죽도 먹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텼다. 며칠을 먹지 못했지만 먹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그런 나를 아버지가 미음을 끓여 먹이셨다. 음력 2월이 되면 내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