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가이 진 구 진나라 환온이 촉으로 가다가 장강 중류의 삼협을 지나게 되었는데,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 왔다. 새끼를 빼앗긴 어미 원숭이는 강안부터 애절하게 울며 백여 리를 뒤따라와 마침내 배 위에 뛰어올라 배를 부여잡고 죽고 말았다. 원숭이의 배를 가르고 보니, 창자가 모두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눈앞에서 자식이 잡혀가는 것을 보는 어미의 미어지는 애절함에 창자까지 끊어진 것이다. 짐승의 새끼 잃은 슬픔이 이러한대, 품고, 토닥이며 금이야 옥이야 키워온 사람의 자식이야 비할바가 있겠는가! “아이 생각이 나서 아침에 눈 뜨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해뜨는 것이 두렵습니다.” “발자국 소리나 문여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가 오는 것 같아 소름 돋고 깜짝깜짝 놀랍니다.” “배상 필요없습니다. 국가로부터 돈은 필요 없고, 사고 책임을 가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10.29 이태원참사로 아이를 잃은 유기족들의 삶은 무너지고, 창자가 끊어질듯한 슬픔은 멍어리로 굳어져 가슴 한가운데 남아있다. 하물며 참사 현장에 있었던 119 소방대원, 간호사, 기자들도 눈앞에서 죽어가는 청춘들을 구하지 못한 심각한 트라우마 때문에 낮에도 힘들어 일하기 어렵다고 호소하는데 유족들이야 오죽하랴. “아이는 숨 못 쉬고 떠났는데,‘배가 너무 고파 내 입으로 혹시 밥이라도 들어가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내 입을 꿰매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 아픔들을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가! 정여울 작가는 중앙일보에 슬픔의 치유와 목놓아 울 권리를 단속하는 정부 대해 이렇게 쓴다. [모든 슬픔은 타인의 슬픔과 끝내 연결되기를 꿈꿉니다. 슬픔의 본성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당신도, 그들도, 온 세상이 똑같은 슬픔을 앓고 있음을 알면, 슬픔은 비로소 마음껏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안식처를 찾게 됩니다. 내 심장에만 갇혀 있던 슬픔이 당신과 나의 맞잡은 손, 내 흐느끼는 어깨를 감싸는 당신의 손길 위에 머물기 시작하면,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던 슬픔은 비로소 노래처럼 연기처럼 풀어헤쳐져 당신과 나, 우리들의 ‘사이’에 존재하게 됩니다. 그것이 치유의 첫걸음입니다.] 참 이상하게도 10.29 이태원참사에 대해 정부는 슬픔을 강압적으로 통제해 유가족과 국민이 속으로 울고 있다. 심하게는 슬퍼해도 되는지 자기검열까지 하게 될 정도로 통제하고 겁박한다. 위패도 영정도 없는 분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만 울도록 하며 슬퍼하는 방식도, 장소도, 기한과 용어까지도 정부가 통제함으로써, 유족들은 물론 진정으로 함께 슬퍼하는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공감조차 차단되고 있다. 근조 리본은 거꾸로 달아야 하며, 분향소는 지자체에 1개 이상 설치하지 못하며, 유족들은 서로 연락하지 못하게 하라고 공문까지 내렸다고 하니, 꽃다운 청춘의 참사를 대하는 정부가 희생자와 부상자와 유가족과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지, 오로지 슬픔을 차단하여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정치적‘원망’을 막기 위함인지 판단이 쉽지않다. 이에 더하여 정부ㆍ여당 관련자들은 희생자 공개와 애도를‘2차가해’‘폐륜’이라는 단어로 의미를 비틀어 사용하며, 희생자들은 [놀러갔다 사고 당한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로 규정해버린다. 그래서 유가족들이 공개로 슬퍼하면 안 된다는 듯 몰아가는 진짜 폐륜행위까지 서슴지 않는다. 통곡할 권리를 허락하라! 축제와 여행은 우리 삶이다. 특히 청년의 삶에서 놀이는 권리다. 1989년 힐스버러 스타디움 붕괴로 96명의 희생자와 200명이 넘는 부상자가 생긴 참사도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의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놀러간 국민이 당한 참사다. 1997년 대한항공 801기가 괌 국제공항 접근 중 추락해 승객 254명 중 228명이 사망한 사고도 승객 대부분은 관광목적 여행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참사가 축제와 여행, 공연과 관계있다. 놀이가 우리 삶 일부이기 때문이다. 놀이 과정 중에 생긴 참사를 전 국민이 애도했고, 축구 경기장, 괌 국제공항 사고현장 등 대부분 참사 현장에 추모비를 세워 세계가 애도하고 있다. 축제를 즐기다 당한 참사에 희생자와 부상자의 책임은 전혀 없다. 내 아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대구 월드컵 공원에서 열린 '할로윈 축제'에 따라간 적이 있다. 할로윈 행사는 낯설지만 축제였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그들의 문화였다. 아무런 문제 없는 그들 삶의 일부였다. 중장년층이 이해하지 못하는 축제에 참석했다고 청년의 삶을 일탈로 몰아 마치 참사의 책임을 희생자에게 돌리듯 하는 책임전가는 절대 안 된다. 통곡할 권리를 허락해야 한다. 엄청난 참사를 맞이한 국민도 아무 일 없듯 애써 외면하며 일상에 임하지만,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을 잃은 슬픔은 틀어 막은 손가락 사이에서 더 큰 압력으로 터져 나올 수 밖에 없다. 원숭이 어미의 단장 이야기를 전해 들은 환온은 크게 노하여 그 병사를 내쫓아 버렸다.한마리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 병사에게도 출병사의 벌을 내렸는데, 꽃다운 청춘 158명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야 태산 같다. 최소한 법을 떠나 도의적 책임으로라도 물러나게 할사람 물러나게 하고 유가족의 슬픔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한다. 오히려 그것이 정부 지지를 회복하는 사회 통합의 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통곡할 권리를 허락하라!”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축구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최고의 열정적인 구장 경기이다. 축구는 우선 경기장이 넓고 선수들의 공간 활동이 넓어 관중들과 시청자들의 시야를 시원하게 한다. 다양한 형태의 축구경기 행사 중에서도 축구경기의 최고 게임은 월드컵 축구대회이다. 그래서 월드컵 축구가 열리는 해이면 언제나 온 세계의 축구팬들이 열광한다. 우리나라의 소위 레드 컬쳐와 붉은 악마라는 범민족적인 스포츠 응원 문화는 2002년 한ㆍ일 월드컵 축구을 시작으로 출발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들이 만든 새로운 한국의 집단 응원 문화이기도 하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들은 축구 때문에 전쟁까지 하기도 한다. 어떤 선수는 중요한 축구경기에서 페널틱 킥을 못 넣어 총살을 당한 적도 있다. 어쨌든 축구는 민족적 자긍심을 일으키는 열정적 경기인 것만은 사실이다. 남미의 축구강국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여러 가지 민족적 갈등으로 서로 사이가 나쁘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금색과 은색으로 다리 색을 구별하여 국경을 나누고 있는데, 두 나라는 서로의 국가적 자존심의 한 부분을 축구에 걸고 있다. 축구강국 브라질은 프로팀이 10만개도 넘으며, 아르헨티나는 축구의 영웅 故 마라도나선수를, 브라질은 축구황제 故펠레 선수를 각각 그 나라의 영원한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축구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그 내면에는 우리민족이 갖고 있는 승부정신 때문인 것 같다. 승부세계에는 패배를 싫어하는 속성이 있다. 승부정신은 인간을 발전시키는 이기심과 경쟁심인데, 그것은 모든 일에서 성공을 이루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우리민족에게는 역사적으로 이런 승부정신이 강하게 배여 있다고 생각한다. 가정교육에서부터 학교교육에 이르기까지 수 세월을 살아온 생활환경 속에서 우리는 은연중에 승부정신에 베여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10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한 아시아권 유일의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첫 월드컵 진출이 1954년 이지만 일본은 1998년이다. 우리나라의 월드컵 진출은 이웃 일본 보다 44년이나 빠르다. 우리나라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 스페인, 프랑스등과 함께 10회 연속 월드컵 진출한 6개국에 포함된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화려한 축구의 제전이다. 돈과 효용이 함께하는 축구 경제학이다. 월드컵 축구의 총상금이 6천억 원에 이른다. 32강 출전수당이 경기당 20억 원이다. 그 비싼 경기를 방안에 앉아서 편안하게 TV화면을 즐기는 시청자는 축구를 통해 행복경제를 향수한다. TV화면 또는 스마트폰으로 공짜로 즐기는 월드컵 축구는 행복경제의 실현이며, 최선의 문화경제 향수이기도 하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H조에 속해 있다. 만만찮은 강적들을 만나 쉽지는 않았지만, 16강의 꿈을 가까스로 이루었다. 현재까지 카타르 월드컵 H 조의 FIFA랭킹순위를 보면 16강 진출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천신만고 끝에 기적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 팀은 과거 2002년 한일월드컵 4강과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월드컵에서 16강에 든 경험이 있어,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도 거는 기대가 크다. 2022년 월드컵 축구는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11.21~12.19일까지 근 한 달 동안 열릴 예정이다. 이번 월드컵 축구는 22회 월드컵이며 축구단일 종목스포츠임에도 인류의 제전인 올림픽 못지않은 세계적적 관심을 끌고 있다. 그것은 축구가 갖고 있는 스포츠 경기상의 위상과 유럽과 남미를 비롯한 축구 강국들이 젊음의 향연재로 축구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는 대형 그린 구장에서 스릴과 박력이 넘쳐나는 최고의 남성 스포츠이다. 그래서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승리할 경우는 감성의 카타르시스를 통해서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국가적 명예를 걸고 열리는 축구대회는 그 어떤 드라마나 TV 프로그램보다도 월등히 큰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는 행복경제의 향연장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스스로 열일을 제치고 한국축구팀을 혼신의 에너지를 바쳐서 성원한다. 일찌기 우리나라는 2002년 제 17회 한ㆍ일 월드컵에서 온 국민을 열광케 한 즐거운 기억을 갖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필자는 아직도 그 생생하던 감동적인 장면들을 기억하고 있다. 2002년 한ㆍ일 월드컵에서는 히딩크라는 유능한 감독과 박지성, 안정환, 설기현, 이영표 같은 탁월한 선수들 덕분에 세계 4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축구 역사는 참으로 오래 되었다. 지금의 현대식 축구와는 다르긴 하지만, 오랜 역사로는 이미 삼국시대에 우리 민족은 축구와 유사한 蹴鞠(축국)이라는 경기를 했었다. 그러나 현대식 축구는 영국에서 유래했으며, 우리나라가 월드컵 행사에 최초로 본선무대에 진출한 것은 1954년 6월에 열린 스위스 월드컵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1945년 광복을 맞은 지 10년도 채 안된 상황이었으며, 6.25 전쟁을 끝내고 1953년 7월 27일 휴전을 맺어, 전흔이 아직 아물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도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일본을 5:1로 꺾고, 스위스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그 당시는 비행기 티켓을 국내에서 구하지 못해, 일본 동경까지 가서 겨우 구하고, 선수진이 두 번이나 나누어 경기 전날 겨우 개최국 스위스에 도착하는 천신만고의 고난을 겪었다. 지친 여정으로 첫 본선 경기에서 당시의 준우승국 헝가리에게 9:0이라는 부끄러운 패배를 했지만, 열악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고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한ㆍ일 월드컵 20주년에 맞는 이번의 카타르의 월드컵 축구는 내외 정치ㆍ경제 환경이 어렵고, 이태원 사태 등으로 우울한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위안이 될 수 있기를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레드 컬쳐 문화가 4강 신화와 함께 살아있는 상황에서 월드컵 16강을 향한 꿈은 당연하다고 볼 수가 있다. 지난 11월 24일 목요일 우리나라는 대망의 첫 게임을 우루과이와 치루었다. 힘겨운 무승부경기를 해냈다. 그리고 11월 28일의 가나전은 그야말로 잘 싸웠지만 2:3으로 분패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지난 12월 2일에는 참으로 드라마틱한 카타르 도하의 기적을 이루었다. 강호 포르투칼을 후반 6분 연장시간에 2:1의 역전 스코아로 물리침으로써 바늘구멍 같은 9%의 가능성을 기적적으로 이루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한국축구의 대 위업이다. 월드컵 축구 16강은 우리국민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분열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묘약이자 행복재이기도 하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실력보다 강한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좋은 결과를 이루어가고 있는 한국축구 대표팀에 큰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스포츠 축구를 통해서 온 국민이 행복경제를 향수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장 사 현- 경북 봉화 출생. 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저서 『수필문학 총서』 , 『자서전 쓰기의 정석』 외 다수- 문예진흥기금 심의위원, 우수도서 심의위원- 주요 문학세미나 발제위원, 각종 문학공모전 심사위원- 대통령기장, 정부표창, 한국문인 수필문학상 본상, 봉화군예술인상 외 다수-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한국본부 대구지역위원회 부회장 대구문협, 영축문학 이사- 영남대학교 문학예술과정 책임교수, 사)영남문학예술인협회 이사장민족의 웅대한 기상이 살아 숨 쉬는 발해마을*저 광활한 태초의 땅을 수복하고중원을 호령하던 해동성국 발해암흑의 광야에서 붉은 피를 새기며30성상을 휘달리며 찬란한 새벽을열어주신 태조 대조영 황제선조의 웅대한 기상을 천고千古에세세토록 남기려고 남하南下 이후,몽고군을 격퇴한 태금취太金就대장군보라!천하의 길지吉地에 터를 잡아5천년 역사 중에 민족의 자존을보존하게 한 태순금太舜琴 선생가가호호家家戶戶 명패에 새겨진봉황은 날개를 펴고거리의 깃발은 동북공정에 맞서맹렬猛烈히 휘날리고 있다.*경북 경산에 있는 태씨 집성촌
자유기고가이 진 구 경산시와 접한 청도군의 최대 과제는 인구감소를 막고, 장기적으로 인구 증가를 이루는 것이다. 군수 이하 모든 공무원은 물론 군의원, 지역 유지들이 모두 나서 방안을 찾지만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1980년 8만 5,550명이던 청도군 인구는 2000년 5만 2,655명으로 줄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0년 4만 2,852으로 줄었고, 2021년 12월 기준 41,891명으로 1년 만에 961명 더 줄었다. 대구에 접하고 대학이 많아 30여년 간 계속 인구가 증가해, 인구 감소에는 별 걱정이 없었던 우리 경산시도 결국 지방 인구감소의 서리를 피해가지 못한다. 국가통계포털(KOSIS)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면 경산시의 2021년 10월 인구는 268,431명이었는데, 2022년 4월에는 267,583명으로 불과 6개월 만에 무려 848명 감소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지방은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 경북 몇 개 지자체는 소멸을 대비할 정도이다. 지방 인구감소란 발등의 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와세다대학 경제학 박사 이노우에 도모히로 교수는 고마자와 대학에서 인공지능과 경제학의 관계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그의 저서 [모두를 위한 분배]에서 그는 지방에서 도시로 인구가 유입되는 도시화를 역전시켜 지방 인구를 늘리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한 가지는 아직은 미래의 꿈 같은 일로, 가상현실(VR)이 고도로 발달하여, 공간을 넘어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직접 만나는 것보다 더 장점이 많을 경우가 되면 지방 인구가 증가한다고 한다. 복잡하고 자연을 느낄 수도 없는 도시에 굳이 살지 않아도 가상현실로 회의나 보고 등이 직접 만나는 것보다 편하다면, 공해에 찌든 도시에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안은 이노우에 교수 전공 분야 주장이지만 아직은 막연하고 실감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노우에 교수가 주장하는 현실적인 지방 인구 증가를 위한 다른 하나의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기본소득 지급>이다. 그는 모든 국민 개개인에게 최소한의 생계비인 55만원(이노우에 교수가 일본에서 지급하자는 금액을 우리나라에서 현실화 했을 때 금액)을 기본소득으로 매월 지급한다면 서울 등 수도권의 경우에는 최저생계가 어려울지 몰라도 지방은 부족하지만 최저생계가 가능한 금액이기 때문에 확실한 인구분산 정책이 된다고 한다. 4인 가족을 예로 들어보자! 이 가족은 매월 220만 원 기본소득을 지급 받게 된다. 서울, 경기와 달리 지방은 월세로 주거문제를 해결하더라도 50만원 정도면 가능하고, 나머지 170만원은 넉넉하지는 않지만 최저생계비는 된다. 여기에 부부가 시간제 노동으로 100만 원씩만 보탠다면 이 가정의 수입은 420만 원이 되어 살아갈 만하다. 그러나 수도권은 지방과 같은 크기의 주거공간을 구하면, 월 100만 원은 훌쩍 넘는다. 여기에 지방 두 배가 넘는 식재료비, 교통비까지 더한다면 수도권 시민들이 느끼는 55만원 기본소득의 가치는 지방의 1/3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방 이전이 충분히 고려된다고 한다. 공무원의 월급으로 비교하면 쉽다. 수도권 공무원은 부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빠듯하지만 지방 공무원은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것과 같다. 여기에 주택(APT 포함) 가격까지 비교한다면 수도권 살이는 고난 할 뿐이다. 그런데 지방에서 기본소득을 받으며 일정 수입만 더한다면 오히려 안정되고 상대적으로 평안한 삶이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여기에다 이노우에 교수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 기본소득이 지역화폐로 지급되어 승수효과까지 더해지면 지방으로 인구분산 효과는 더 커진다. 지역화폐 승수효과란, 매달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최근 지급되는 지역화폐로 지급되면 지방산업의 승수효과로 일자리가 늘어나 지방에서도 젊은이들을 잡아들 수 있게 된다. 즉, 수도권으로 돈이 올라가는 대기업 제품이 아닌 지방에서 치킨 한 마리를 더 사 먹는다면 치킨을 파는 사람뿐만 아니라, 치킨무, 튀김 기름, 포장지 회사, 닭 키우는 사람 등 모두가 판매가 늘어나는 승수효과가 생기는 선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또~ 또~ 걱정한다. 부자들은 자기 걱정만 하는데, 자산 50억 이하 사람들은 나라부터 걱정한다. 줄 돈이 있느냐고요? 나라 망하지 않느냐고요?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기본소득은 말로만 하던 천부인권의 현실적 실현인데, 국민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라고 한다. 또한 지급능력도 있어, 지금 당장 55만원은 어렵지만 '전국민 매월 30만원 지급은 증세없이 가능하다(LAB2050)'라며 근거 자료도 제시한다. 지면 관계로 실현 가능성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기본소득은 지방 인구감소의 현실적 대안이다. 그러나 완전한 기본소득 시행은 중앙정부의 역할이니 의견을 모으면 되고, 지방에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서서히 준비를 해야 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고 일자리야!
수필가김 미 숙 “엄마 출근 준비 다 했어요?” 나는 매일 아침 엄마한테 출근 준비 다 했냐고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은 엄마는 내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내려오란다.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살고 있는 엄마와 나는 출근 시간이 같다. 팔십이 코앞인 엄마는 세금과 의료 보험을 떼는 공무원으로 일을 한다. 아침마다 직장인처럼 옷을 갖춰 입고 얼굴 단장도 예쁘게 하고 나온다. 내가 근무하는 곳으로 가는 길에 엄마의 직장이 있다. 매일 만나서 출근하는 우릴 보고 자매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웃음으로 대답한다. 엄마는 학교에서 일을 한다. 학교에 도착한 엄마가 하는 일은 작업복을 갈아입고 청소하는 일이다. 오전에 몇 시간 청소하는 일을 하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할머니 역할도 한다. 싸우는 아이들을 말리는가 하면, 쓰레기를 줍거나 인사를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들은 엄마의 팬이다. 가끔 아이들로부터 감사의 편지도 받는다. 수십 년 전 초겨울, 마흔아홉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엄마와 어린 오 남매가 걱정되었던지 아버지는 쉽게 눈을 감지 못했다. 심장이 멎은 뒤에도 눈을 뜨고 계셔서 엄마가 아버지의 뜬눈을 손으로 덮어드렸다. 엄마는 해방둥이였다. 광복이 되던 해에 태어나서 6.25가 터지던 해에 초등학교 입학만 하고선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동네까지 침공함으로써 엄마는 학교와 멀어졌다. 열아홉에 아버지를 만나 혼배를 올린 후 자식을 낳아 키우느라 애당초 엄마의 삶은 없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신 후 엄마의 삶은 엄동설한의 하루하루였다. 겨울의 한 복판에 서서 옴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했다. 엄마는 세상 물정 모르고 아버지와 오 남매 뒷바라지만 하면서 살았다. 까막눈이었던 엄마에게 세상은 버티고 살아가기엔 너무나 잔인했다. 엄마는 아버지를 잃고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다섯 개의 도시락을 싸 놓고 자식들 입에 풀칠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했다. 우리 오 남매를 굶기지 않기 위해서 동분서주 움직였다. 더군다나 글자를 모르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사판과 식당이 전부였다. 남자도 힘든 아파트 공사판에서 무거운 벽돌을 등에 메고 날라야 했고 생선을 이고 길거리를 기웃거렸다. 엄마는 지난한 삶의 무게를 견디며 참고 또 참으면서 묵묵히 일을 했다. 삶은 고단한 계단이었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나선형 계단이었다. 우리 오 남매는 엄마의 억척같은 삶을 보면서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땟거리가 없어서 굶는 날이 허다했지만 엄마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에 한 번도 절망을 품지 않았다. 엄마는 오로지 희망을 붙들고 살았다. 그렇게 살았던 엄마 얼굴은 늘 맑은 날이었다. 흐린 날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긍정적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한 명씩 결혼을 했다. 아무것도 못해준 엄마는 가슴이 미어졌다. 하지만 딸 넷을 결혼시킬 때까지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딸들에게 엄마 품에서 잘 떠나간다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그런 엄마의 모습은 낙천적이어서 가능했다. 막내인 남동생의 결혼식이 끝나고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딸 넷을 시집보낼 때는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눈물이었다. 혼자서 오 남매를 다 키워 떠나보냈으니 숙제를 다 끝냈다는 행복한 눈물이었다. 엄마는 어느 날 학교에서 일하다가 교실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에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그 옛날 6.25가 터져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아쉬움을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달랬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그 공허함이 채워지지는 않았다.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엄마는 글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구사에서 칸 공책 여러 권을 사 오셨다. 거기에 글자를 써 달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 이름과 동생들, 손자 손녀 이름을 노트 맨 윗자리에 적어서 드렸다. 일주일 걸려서 노트 한 권을 빽빽하게 그려 오셨다. 나는 노트에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붙였다. 엄마는 다른 노트를 내밀며 또 적어 달라고 하셨다. 이번에는 주변의 꽃과 나무와 사물의 이름을 적었다. 또 일주일이 걸렸다. 비뚤비뚤 쓴 글자는 지렁이가 굴러가는 것 같았고 새가 날아가는 그림을 그려왔다. 엄마는 수십 년 동안 까막눈으로 살았다. 글공부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한 번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글자를 쓰는 손에 힘이 가해져서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방금 읽었던 글자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엄마는 오전에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오후에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땅거미가 짙어질 무렵, 집으로 들어와 저녁을 해 드시고는 또 글자를 그렸다. 하루도 쉬지 않고 텔레비전도 끈 채 읽고 쓰고 반복했다. 그러구러 여러 날이 지났다. 하루는 우리 집에 와서 아이들이 읽었던 동화책을 달라고 하셨다. 한 권씩 한 권씩 가져가신 동화책은 엄마의 집에서 또 다른 친구가 되었다. 엄마는 매일 동화책을 읽고 글자를 따라 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눈을 떴다. 내가 심봉사처럼 눈을 떴어.”하시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소리 없이 흐르는 이슬방울이 엄마의 눈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모습에 나도 코가 시큰거리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지금껏 아픈 곳 없이 옆에 있는 것만도 감사한데 동화책까지 줄줄 읽으면서 즐거워하는 엄마가 자랑스럽다. 매일 아침 엄마가 들려주는 동화를 들으면서 나는 엄마와 행복한 출근길을 맞는다.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은 평소의 일상을 놓고 심신의 휴식을 위하여 타지역으로 떠나는 것을 말한다. 여행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러가지 조건을 점검하여야 한다. 첫째 건강이다. 여행은 대부분 많은 걷기를 필요로 한다. 역사유적지든 경승지이든 무엇을 보고 즐기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도의 걷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여행을 위해서는 적당히 걸을 수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경비문제이다. 여행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의 비용차이가 있지만 일단 여행을 위해서는 일정한 여행비용이 필요하다. 여행에 지출하는 비용은 그것을 지출하지 않고, 돈으로 갖고 있는 것 보다 여행을 하면서 비용으로 지출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다 전문적으로 얘기하면 여행의 잉여가 있기 때문이다. 즉 여행비보다 여행으로 얻는 만족도가 여행비로 지출한 돈의 효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여행을 더욱 값진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 더 필요한 조건을 들라면, 좋은 동반자와 함께하는 것이다. 우선 여행은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 함께 여행을 즐길 수 있고, 함께해서 서로가 기쁨이 커지는 동반자가 있으면 좋다. 그런 여행은 훨씬 유익한 여행이 될 수 있다. 해당 여행지를 잘 아는 동반자가 있으면 더욱 좋다. 역사유적지나 경승지의 역사적 배경이나 자연조건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전문 해설자 수준의 능력을 가진 여행자와 함께하는 여행은 여행의 가치를 월등하게 높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여행에서도 통하는 얘기다. 필자는 오래 전 몽골 여행을 하면서 역사전문가와 함께 간 적이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학자요, 이름만 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대학의 역사 교수였다. 몽골과 우리나라 고대사에 능통한 지식을 가진 그는 몽골의 역사적 유적지에 관해서 세세한 스토리를 잘 설명해 주었다. 다니는 곳곳의 유적지마다 그의 탁월한 역사해설은 여행을 통한 지적 욕구를 높여 주었고, 알고 보는 여행이 되어 여행 자체의 품격을 높혔다. 여행은 아는 만큼 여행을 즐겁게 하고 가치를 높인다. 삶의 분위기를 전환하거나 성찰을 위해 간간히 챙기는 여행은 삶을 풍요롭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생에 큰 변화를 주기도 한다. 이름있는 여행을 다녀온 후 인생이 바뀐 경우도 가끔 있다. 인간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다. 스스로의 삶을 관리하고 즐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만물이 결실하며 단풍잎이 아름다운 가을에 떠나는 여행은 삶의 행복을 享受하는데 특별한 효과를 주기도 한다. 계절이 가져다 주는 의미와 여행지의 신선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살필 수 있는 가을 여행은 삶의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큰 기여를 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들이 여행을 통해서 인생의 중요한 일들을 해내곤 했다. 더러는 여행을 인생의 도락으로 즐긴 사람들도 있다. 공자는 천하를 철환하며 보고 느낀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며 사람들을 가르쳤고, 많은 학자나 문인들은 여행을 통해서 사유와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사고와 철학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기도도 했다. 경제학자 아담스미스는 가정교사를 하던 백작집의 아들을 데리고 유럽여행을 한 후, 불후의 경제학 고전 <국부론,1776>을 썼고, 근대경제학의 창건자 알프레드 마샬은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고 체험한 지식을 토대로 명저 <경제학 원리>를 저술했다. 우리나라 수필의 효시가 된 연암 박지원은 중국을 여행한 후 <열하일기>라는 명저를 쓰기도 했다. 여행은 살아있는 지식을 체득하는 삶의 현장이며, 사고와 지식의 훈련장이다. 많은 사상가나 문인들은 여행을 인생 도락과 사유의 기회로 삼았다. 즐겁게 여유있는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떠나는 여행은 인생의 많은 것을 얻게 하는 행복의 체험장이다. 어디든지 마음 가는 곳을 부담 없이 다니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하고, 이름난 맛집을 찾아 남이 해주는 갖가지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즐기는 여행은 견도락과 식도락은 인생의 멋과 여유를 즐기는 슬기로운 선택이기도 하다. 기분전환을 위해 가볍게 떠나는 가을 여행은 국내 여행이 해외여행 이상으로 여행의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사정이 되어 해외의 이 름난 곳을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국내의 여행도 이에 못지 않는 여행의 효과를 준다. 특히 우리나라의 가을은 세계에서도 으뜸가는 멋진 계절이기에 국내에서 가을을 즐기기 위한 여행은 코로나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경제적인 행복의 실현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삼천리 금수강산이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명산 청해의 보고이다. 대국들인 중국이나 미국 등 외국의 가을이 장엄하고 기괴한 풍치라면, 한국의 가을은 손끝에 잡히는 정감이 있는 가을이다. 하늘이 푸르고 높으며, 산이 아름답고 바다가 정겨운 한국의 가을여행은 우리 국민들과 정서적으로 길들여져 편안하고 안락하다. 우리나라 가을 여행은 무엇보다도 편안함을 통해서 효율성을 높이는 경제적인 여행이다. 큰 나라 거대한 자연을 느끼는 세계의 경승지는 그들 나름의 문화요, 자연이다. 미국도 중국도 유럽도 호주도 대자연의 위용과 절경을 느낄 수는 있지만, 우리의 가슴과 품에 안기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여행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내에서 즐기는 가을여행은 우리만이 느끼는 독특한 문화와 자연을 향수하는 행복경제 여행이다. 우리나라의 가을 여행은 따뜻한 우리의 정서와 문화가 호흡하는 안락감이 있어 평안과 행복을 준다. 사람의 정서와 문화는 오랜 시간 조상 대대로 지켜온 터전에서 살아오면서 생활 속에 은은하게 몸에 익혀진 것이다. 그래서 문화는 자기만의 독특함이 생명이다. 우리나라의 가을 여행은 일상에 생기를 새롭게 불어넣는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의 여행은 대부분의 여행지 문화가가 비슷하다. 숙박 시설, 음식문화 등 생활문화가 비슷하고, 교통수단이 편리하며, 곳곳의 생활패턴이 우리의 일상과 편안하게 길들여진 곳이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먹거리에 장벽이 없고, 삶이 길들여진 애국심과 함께 하는 특별한 만족감이 있다. 국내 여행은 수용이 쉬운 새로운 체험이며, 일상의 삶과 무리 없이 호흡하는 여행이다. 가을에 떠나는 국내 여행은 인생의 의미를 질적으로 새길 수 있는 유익하고 가성비 높은 행복경제를 실현하는 경제적 선택이다.
자유기고가이 진 구“나는 일본 쪽에 독도를 폭파시켜 버리자고 제안했다.”(미국 정부 자료. 1962.10.29.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 발언)일본이 저렇게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고 한국은 당연하게 독도는 한국 땅이라 말하니, 무인도이고 돌섬인 독도를 폭파해 중립을 지키는 것이 어떠한가? 라는 의미이다.만약 '양극단의 끝을 잡고 그 가운데가 중립이다'라고 잘못 생각한다면 독도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같이 공유하든지 폭파하는 것이 중립이 될 것이다.한국과 일본이 서로 극단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몰라서 매국한다!>라는 속담의 전형으로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가 <중립>이라고 말하는 것은 ‘양쪽의 가치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어, 나의 선택이 일방에 유리한 또는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독도는 역사적으로 또는 국제법으로 보더라도 분명한 우리의 영토이며, 실효 지배도 우리가 하고 있어 어느 것 하나 혼란스러울 것 없는 확실한 우리 땅이다.결론적으로, 독도 소유권에 대한 <중립> 의견은 ‘완전한 한국 영토’이다. 이처럼 중립이란 양극단의 가운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 100% 일방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이 중립이 된다. 마치 주차선을 잘~ 지켜 주차한 차를 주행하던 차가 접촉사고를 냈다면 사고 낸 차가 과실 100%라고 결정하는 것이 정확한 중립적 판단이 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어쭙잖은 중립을 내세워 이미 주차한 차도 10~30%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얼마나 치우친 부정한 판단인가? 오늘 새삼스럽게 중립을 말하는 이유는 2022년 우리 사회가 중립을 빙자하거나 또는 가장하여 정의와 불의를 혼란스럽게 하고, 진실과 거짓을 바꾸어버리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잡는 것은 비단 진보와 보수의 이념 문제가 아니고 함께 건강한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만약 중립의 착각이 타국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면 더욱 바로잡아야 하며,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아픈 기억인 일제 식민시대 일이라면 좌우 이념을 떠나 온 국민이 함께 적극 대처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국민의힘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말이다. <조선족은 능력이 없어 역사 발전이 없고(정체성이론),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야 발전한다.(타율성이론) 그래서 오래전 삼국시대부터 한반도를 다스렸던 조상이 같은 일본이(일선동조론) 한반도를 다스리는 것이 지극히 타당하다>라는 것이 식민사관이다.정진석 위원장 말은 일제가 한반도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식민사관을 정확히 대변하며, 이완용이 나라를 일제에 넘기며 한 변명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니 국힘당 내에서도 한탄이 나온다. 차기 당대표 여론조사 8주 연속 1위인 유승민 전 의원은 “이게 우리 당 비대위원장의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천박한 발언이다.”라며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했고, 이명박 정권 2인자였던 이재오 국힘당 상임고문은 “역사 공부는 오히려 정진석 위원장이 해야 한다. 조선이 일시적으로 썩었다고 일본이 처들어 올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한다. 이외 검사외전 원작자 김웅 의원 등 많은 건강한 보수 인사들이 정진석 위원장 발언에 한탄하고 있다. 세계의 우파, 보수는 주로 민족에 뿌리를 두고, 애국과 희생을 아이콘으로 생각하고 실천한다. 즉, 미국, 영국의 공화당은 물론 일본의 보수 자민당도 자국의 이익과 일본 본토 민족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가 철저하다. 유독 우리나라의 보수, 우파만 타민족에 의존하려 하고, 조국애가 없다. 심지어 있는 역사도 왜곡하여 타민족과 타국의 이익을 위해 앞장서며 우리 스스로를 비하한다. 이런 극우가 항상 외치는 말이 있다. "이제 미래지향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가져야 한다.”어처구니없는 중립을 가장한 망언이다.바른 중립적 판단이란독립운동가와 친일 매국행위자의 중립자 역할이 '살기 위해 일제에 순응한 자'로 결론짓는 것은 엄청난 무지다. 살기 위해 순응한 자들은 한 목숨 다 바쳐 독립운동 한 사람들께 죄송한 부채의식을 가져야 하며, 친일 매국행위자들은 처벌 받는 것이 옳바른 중립이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내부 권력 싸움이나 당파싸움 중에도 외침에는 하나 되어 맞섰다. 오로지 단 한 번 을사오적 등 매국 국가세력에 의해 식민시대를 맞았을 뿐이다. 이런 근대 역사를 정확히 기억하며, 진보와 보수 이념 대립이 아무리 극심해도 <중립>을 왜곡하여 식민역사를 매국의 눈으로 판단하는 것은 단호하게 막아야 한다. 그것은 진보 보수 이념보다 앞선 국가 자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이대ㆍ자유문예등단ㆍ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문학의 뜰작가협회 회원ㆍ동해 남부시 동인 활동쑥부쟁이꽃숨겨도 숨겨도 감출 수 없는 마음속속들이 빼앗아 간쑥부쟁이꽃 피어논둑 밭둑이 젖는다새파란 하늘에선녀의 옷깃 같은 꽃청초하게 꽃 피어순정을 산산히 깨뜨린다기다릴 사이 없이 옆에 왔다가돌아보면 저만큼 걸어가는 뒷모습애틋하고 절절한 가을날의 고백해맑은 얼굴로 설레게 했어요분홍 저고리에 풀색 치마 입고걷다가 지치면업어 주고 싶은 마음들녘에 서 있는 사랑 이야기행복하세요행복하세요
이 다 은(사)한국국보문인협회 산악회장제33호 동인문집 '내 마음의 슾' 자문위원 이국땅에서 2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엄마를 만난 딸의 첫 마디가 황당했다. “엄마 가까이 오지 마” ‘피는 물보다 진하다.’ 고 했는데 무엇이 우리 모녀의 행복을 갈라놓는가? 1979년 10월 13일 새벽 7시 포항기독병원에서 첫 딸을 출산했다. 남편은 포항종합제철(포스코) 안전 주임으로 근무할 때다. 병원에서는 꽃다발과 축하금 50만 원을 주면서 병원비도 받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효녀 짓을 한 딸이다. 포항에서 대구로 올라와 남편은 직장을 여러 번 옮기면서 가정에도 충실하지 못했다. 여러 날 집에 돌아오지 않던 어느 날 이상한 꿈에서 깨어났다. 무덤 안에 있는 관 속에 사람이 반듯이 누워 있었다. 내가 남편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 백옥같은 하얀 천이 덮이더니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는 꿈이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너무도 생생하고 남편은 부재중인 터라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다시 눕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며 무릎을 꿇고 이 무슨 뜻인지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김00 씨 댁입니까? 낯선 남자로부터 신원을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놀라지 마세요. 김00 씨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맑은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사춘기에 접어든 남매를 두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넜다. 나는 5남매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을 일찍 잃었다. 남편마저 적금통장 하나 없이 떠나 보내고 외로움과 가난을 친구처럼 삼고 살았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딸이 떠나는 날 공항까지 가지도 못하고 동대구 역에서 이별했다. 남편의 빈자리를 지켜 주던 딸마저 떠나니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서러움에 참았던 눈물이 발목에 뚝뚝 떨어졌다. 사회 초년생이 지인도 없는 이국땅에 빈손으로 가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은 엄마이기에 겪어야 할 서러움의 보상이었다. 딸이 미국으로 떠난 지 20년 만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얄궂은 운명이 찾아왔다. 코로나가 확산 되면서 미국 전역을 휩쓸었다. 헤어디자이너인 사위의 미용실도 결국은 문을 닫게 되었다. 코로나가 장기전을 벌이자 그동안도 여러 번이나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던 딸이 이때를 빌미 삼아 적극적으로 사위를 설득시켰다. 다행히 코로나 상황 중에 미국 체류자들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어 항공권을 쉽게 구할 수 있어 미국 생활을 정리하는데 가속도가 붙었다. 딸이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기적이었다. ‘호사다마’라고 하더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인천공항에서 리무진을 타고 집 앞에 내리는 딸의 첫 마디 “엄마 가까이 오지 마” 엄마를 홀로 두고 떠났던 딸이 돌아오는 날은 내 생애 최고의 기쁜 날인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달려가서 딸을 부둥켜안고 실컷 울고도 싶고 기뻐 춤도 추고 싶은 심정인데 그런 엄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팔을 벌리며 다가가는 엄마를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니 청천벽력 같았다. 딸은 무거운 케리어를 끌고 혼자 집으로 들어가고 드라마 같은 한 장면을 보내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위가 공항에서부터 따로 격리되어 어디론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실려 갔기에 더욱 맥이 풀렸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코로나로 인한 정부방침에 대한 야속함을 삭이고 있는데 갑자기 생기 나는 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엄마 빨리 사위 데리러 가 응?” 사위가 올 수 있대? “응- 말 잘해서 집에 올 수 있게 되었대” 그 말을 듣는 순간 힘이 어디서 그렇게 생겼는지 야 하며 벌떡 일어나 자동차 열쇠를 빙빙 돌리며 급히 차를 몰고 주소지를 향했다. 그곳은 청주에 있는 어느 교육연수원이었다. 두 시간을 달려가니 병풍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청주호가 손짓했다. 자연을 좋아하여 혼자서도 여행을 즐기던 내게 오늘은 청주호의 아름다움도 내 마음을 낚아가지 못했다. 공항에서 헤어진 딸과 사위가 새로 마련한 집에서 함께 자가격리를 할 수 있다는 기쁨의 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두 주만 지나면 사랑하는 내 딸을 부둥켜안고 20년 동안의 회포를 풀며 실컷 울어라도 보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네비게이션이 안내 해 준 건물에 들어서니 마스크를 낀 경비원 두 명이 굳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사위는 큰 가방 두 개를 앞에 두고 한 개는 둘러맨 채 초췌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말을 아끼면서 두 시간 만에 보건소에 도착했다. 입국 24시간 내의 항체검사 결과 사위와 딸, 모두 음성판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자가격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두 주간은 2년보다 더 길었다. 코로나는 우리 일상을 망가뜨리며 많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다. 아직도 꼬리를 완전 내리지 않았지만, 딸이 고국에 돌아와 그림 같은 단풍을 보며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게 된 것이 벌써 2년이지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를 찾는 딸의 목소리를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다. “누구 딸이야? 엄마 딸” 서로 쳐다보며 미소짓고 손잡고 다니는 지금이 참 좋다. 어떤 날은 앞서 걷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꿈인지 생시인지 감격의 눈시울을 적시며 가슴이 촉촉해지기도 한다. 이제 딸을 마음껏 안을 수 있어 좋다. 음성만 들어도 내 딸이기에 그냥 좋다. 코로나가 막아놓은 어두운 장벽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소소한 행복이 찾아왔다. 하나님! 이 행복 오래오래 지켜 주소서.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박 천 익 계절이 주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을이 주는 의미는 크다. 왜 그럴까 하고 그 원인을 생각해 보면, 가을은 다른 계절과 구별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니 혹은 철학의 계절이니 하고 얘기하는 것도 가을이 갖고 있는 계절의 특성을 잘 표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봄이 생명을 싹 틔우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그것을 뜨거운 열기와 습도로 성장시키는 계절이다. 가을은 여름이 키운 생명들을 잘 여물게 하여 결실을 맺는 계절이다. 결실은 중요한 것이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인생도 끝이 좋아야 한다. 사계절의 아름다움도 그마다 특성을 갖고 있지만, 가을은 계절의 왕이라고 할 만큼 풍요로운 결실과 생명의 본질을 알게 하는 가르침이 있는 멋진 계절이다. 특히 삼천리 금수강산이 화려하게 단풍들고, 들판에 곡식들이 서늘한 가을바람과 따가운 가을 햇빛에 익어가는 한국의 가을은 세계 그 어느 나라의 가을보다도 멋지고 아름답다. 가을을 일러 사람들은 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한다. 높은 하늘과 긴 태양이 말을 살찌게 하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가을은 여름이 키운 식물들을 맑은 하늘의 햇빛과 따가운 열기로 만물을 살찌우고 결실을 맺도록 한다. 식물들을 열과 습기로 키우는 여름은 적절한 습도와 열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구름이 하늘아래 낮게 위치하여 수시로 비를 내려서 자라는 식물들에게 충분한 열기와 수분을 제공한다. 그래서 여름 하늘은 낮고 자주 구름이 끼며 습도가 높다. 지구촌에 만물이 생존하기 위하여 가장 많이 필요한 식물들을 키우기 위한 자연의 섭리이다. 먹이사슬의 구조상,식물을 먹이로 하는 대상이 가장 많은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을 위해서도 식물은 지구상에 가장 많이 존재해야 한다. 식물은 자연의 질서 상, 땅과 하늘의 도움으로 수많은 동물들에게 먹이 감으로 제공되고 있다. 그래서 먹이사슬의 체계상 식물은 동물보다 절대적으로 많아야 한다. 식물의 존재는 생물의 존재 조건에 필요한 산소와 각종 영양소를 풍요롭게 제공하기도 한다. 지구상에 다양한 식물이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생명의 축복이다. 그런 식물들이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한 대부분의 나라 가을에는 대부분 결실을 맺는다. 벼가 익으며, 과일도 익고, 나무는 한 해의 삶의 과업을 다하기 위해 열매를 맺고 익히며, 다음해를 위하여 잎새를 떨구고,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가지만 앙상하게 남겨, 춥고 긴 겨울을 견딘다. 그것은 생명을 온전히 유지하려는 나무의 지혜이다. 계절수가 잎을 떨구지 않고 겨울을 견디려고 한다면 그 나무는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를 충족치 못해서 다음해의 생명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다. 오색으로 단풍든 산야의 나무들이 사람들의 눈에는 한없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것은 알고 보면 나무가 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잎새를 단풍지우고 낙엽으로 만들어 떨구는 것은, 나무의 지혜이기도 하지만, 가을의 선물이기도 하다. 잎이 지지 않는 계절 수는 추운 겨울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곡식이 익고, 과수나무의 열매가 충실한 과실을 맺는 가을, 그리고 오색찬란한 단풍잎이 산야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가을은 분명히 사람들에게 삶의 이치를 깊이 알게 하는 깨달음을 준다. 그래서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자 철학의 계절이다. 봄이 여자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고도 한다. 봄은 계절의 빛깔이 여성처럼 곱다. 봄은 연약함으로 귀한 생명을 잉태하고 출발시킨다.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으로 어린 생명들을 땅속에서 솟아나게 하고, 앙상한 나무가지에서 새싹이 돋아 나게 한다. 생명의 기지개를 피우는 봄은 아지랑이처럼 곱게 피어나는 여성의 계절이다. 일찍이 시인 괴테는 “여성적인 것이 즉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고 했다. 그러나 가을은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조절하며, 강렬한 기상으로 과실을 영글게 하고, 냉정한 기운으로 단풍과 낙엽을 만들어 자연의 법칙을 지키게 하는 준엄함을 보여준다. 가을은 머물러야 할 것과 갈 것을 결정짓게 한다. 생명의 오감의 법칙을 알게 하고, 그 법칙에 따라 보낼 것은 보내고, 머물 것은 머물게 함으로써 세상이 배우고 깨닫게 한다. 가을은 계절의 법칙을 통해서 인생의 깊이를 깨닫게 하는 철학의 계절이며 남자의 계절이다. 가을은 계절의 변화를 통해서 인생에 깨달음을 가장 깊숙하게 알게 한다. 생존을 위하여 무엇이 소중하며, 무엇이 버려야 하고, 취해야 하는지 생존을 위한 알맹이와 껍데기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가을은 허망한 망상들을 낙엽처럼 버려야 함을 알게 하고, 인생의 과실이 무엇인지를 알게도 한다. 계절의 현상들을 통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어느 계절 보다 처절히 느끼고 생각하게 한다. 가을은 화려한 듯 하면서도 엄중하고, 아름다움 속에서도 냉정함을 알게하는 계절이다. 가을은 인생의 행복을 절감케 하는 계절이다. 가을에 느끼는 인간의 행복은 진실의 체득에서 나온다. 물질과 사유를 조화롭게 관리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행복은 현실속에서 실현되는 행복경제에 의하여 바람직스럽게 구현된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충실하게 노력해온 사람들에게 행복은 그 노력 분 만큼 실현된다. 가을은 성실한 삶이 보장해주는 삶의 보답을 알게 한다. 인생은 노력하고 깨닫는 만큼에 상응하는 축복과 결실이 자연속의 가을처럼 인생에서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서 행복경제란 이상과 현실이 조화되는 실증적이고도 구체적인 행복의 실현이다. 실용적 가치에 의하여 바르게 추구해온 현실적 과실, 즉 경제와 행복이 함께 조화되어야 바람직한 행복실현이 가능함을 말한다. 행복경제의 실현은 이상과 현실이 조화되는 실질적이고도 실증적이며 현실적인 것이다. 그것은 가을이 행복한 삶 속에 있으며, 성실하게 잘 관리 된 부와 행복의 균형적인 모습이다. 가을과 행복경제는 잘 어우러진 모습으로 인생의 가치를 높이고, 삶의 목표를 실현해나가는 좋은 협력자이다. 모두가 이 멋진 가을의 의미를 알고 행복한 가을의 삶을 누리는 슬기롭고 축복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진구(자유기고가) 추석을 전후하여 경산시와 경계한 대구 수성구청과 관할 동사무소에 많은 문의 전화와 항의성 전화가 왔다고 한다. “경산시는 시민들에게 20만 원씩 준다는데 우리는 왜 주지 않느냐?” 라는 내용이다. 경산시가 외국인 영주권자, 결혼이민자를 포함한 모든 경산시민께 1인당 재난지원금 20만원을 지불하고 있으니 옆 지자체 시민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한국농수산유통공사가 산출한 올해 2022년 6~7인 가족 기준 추석 차례상 구매비용은 전통시장 평균 243,273원, 마트 평균 307,430원이니, 부부 지원금 40만 원 만으로도 추석 차례상은 넉넉히 차렸을 것이고, 모든 시민이 특별한 보너스로 행복했을 것이다. 내가 경산자치신문에 글 쓴지 10여 년이 넘었지만, 보수당 단체장을 칭찬하는 글은 처음이다. 이전에는 지면까지 빌려 칭찬할만한 일이 없었고, 있었더라도 미래 지향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추석 전에 이렇게 전 시민께 지원금을 지불한 지자체는 경산시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첫 칭찬이 다소 쑥스럽지만 지원금을 받은 경산시민 한 사람으로 행복함을 전하고 미래 희망의 메시지에 고마움을 전한다. 매년 10월 둘째 주 이맘때가 되면, 미국 알래스카주 전체가 축제에 빠진다. 모든 주민께 지급되는 알래스카형 기본소득 '영구기금 배당금'이 지급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매년 1인당 1000~2000달러 우리 돈으로 140만 원~280만 원씩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주민께 나누어 주는데, 4인 가족이면 460만 원~1120만 원이 되니 경제가 살아나고 축제가 벌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기본소득 지급은 1980년부터 시작되어 이미 40년이 훌쩍 넘었다. 알래스카주의 기본소득(영구기금 배당금)은 1년 최저생활비에는 미치지 못할 정도이니 넉넉한 정도는 아니지만, 서민께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어서 기본소득 지급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는 매우 크다. 알래스카주는 미국 전체 50개 주 중에서 상위 1%와 하위 1%의 소득편차가 가장 적어 미국에서 가장 평등한 주가 되었고, 더 중요한 것은 소득 하위그룹의 평균소득이 50개 주 중 가장 높다는 것이다. 미국 알래스카주의 기본소득 지급을 말하면 ‘사람 잡는 반풍수’ 학자나 교수들은 ‘기본소득은 좌익 빨갱이들의 주장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알래스카주의 기본소득을 주 헌법에 명시하고 시행한 주지사는 완고한 우파이자 철저한 자본주의 실천 정치가인 제이 스터너 해먼드(Jay Sterner Hammond이다. “알래스카 원전에서 나오는 수익을 주 정부 소유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주민께 고르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한 그의 주장의 이론적 근거는 ‘이 돈을 주 정부가 가져가면 공공 부분을 강화하는 사회주의형이 되니, 공화당원인 본인은 시장주의 원칙에 따라 개개인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기본소득 주장자들은 가장 강력한 보수 시장주의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 ’마크 저크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등 세계 최고 갑부들이다. 기본소득은 자본주의가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 불평등을 조금 줄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가장 자본주의적 정책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기본소득을 40년 째 시행되도록 기반을 제공한‘제이 해먼드’는 알래스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우파 주지사로 앞으로도 기록될 것이다. 경산시의 재난지원금이 알래스카 기본소득과는 다르지만, 시장과 시의회가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약 500억 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기본소득 같이 모든 시민께 동등하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실천한 것에서 희망을 본다. 경산시장과 시의원이 보수의 가치를 실천하며 시민께 희망을 전하는 시기에, 소속당 국민의힘은‘지역화폐 예산 전액삭감’이란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으로 국민의 반발을 사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들은 부자와 서민의 소득, 재산 격차가 상상보다 훨씬 더 심해지는 극심한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1% 부자들과 1% 대기업에‘횡재세’등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95% 서민을 위한 공공복지에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여당 국민의힘은 불과 100여 개의 초부자 대기업과 전 국민 중 1% 내외의 초부자에게 세금을 연간 13조원이나 깍아주려 하면서도, 95% 국민을 위한 고작 6500억원의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없애겠다고 한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그나마 어려운 95% 국민이 생활비로 사용한 금액의 10%를 지원해주고, 전통시장, 골목상권 등 중소상공인의 숨통을 틔워주던 것이 지역화폐이다. 이런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대다수 국민보다 소수 특권층을 위한 정책을 만들겠다’는 숨은 공약의 구체적인 실행안이다. 같은 시기에 진행된 두 정책 중 경산시의 기본소득형‘재난지원금’지급이 미래지향적 보수 정책이어서 시민께 희망을 주고 있다면, 정부와 국민의힘에 의해 진행되는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은 보수 정책도 아니며 정의롭지도 못하며 미래지향적이지도 않다. 진보는 물론, 나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보수도 곳곳에 있다. 건강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힘을 모아 누가 뭐라 해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 삶의 질 높이기에 주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다시 한번 재난지원금 지급을 단행한 경산시장과 시의원들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이재희1949년 경북경산출생(전)역도선수(현)대구 해안농약사 대표그리움마음이 빈듯하여뜰앞에 나왔더니별도 달도 먼저 알고풀잎에서 기다린다구름 한장 손에 들고달빛 불을 밝혀시 한 소절 올려놓고그대인 듯 바라본다